온실 속의 인권위, 이제 서리에 맞서다. 화이팅.
김대중·노무현 정권 하에서도 인권위가 시민사회의 탄탄한 지지를 받았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두 정권은 인권위에 호의적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권위를 만든 장본인이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권위와 정부의 의견이 충돌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말하는 ‘쿨’한 대통령이었다. 그런 정권 하에서 인권위는 시민사회의 강력한 지지 없이도 사회적 영향력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낸 10년은 오히려 인권위에게 독약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 인권위에게는 시민사회와 지지가 그렇게 절실하지 않았다. 인권위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재정과 조직을 제공받았고, 피권고기관도 인권위의 결정을 존중해주었다. 인권위가 ‘시민사회의 소통’이라는 문제에 ‘방심’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문제를 자꾸 ‘나쁜 정권’의 문제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 문제의 핵심은 인권위가 시민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인권위는 애초부터 국가와 갈등하라고 만든 기구이고, 인권위에게 모든 정권은 ‘나쁜 정권’일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 동안의 밀월 기간은 예외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법은 간단하다. 인권위는 나쁜 정부를 탓할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와의 접촉면을 확대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시민사회의 비판과 감시를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그동안 인권사회단체들이 왜 그토록 줄기차게 인권위와 시민사회의 소통 부족을 질타해 왔는지, 다시 한 번 곱씹어 봐야 한다.
전임 인권위원장은 대통령과 소통할 수 없었다고 한탄하며 자리를 물러나야 했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시민들과의 소통이었다. 인권위가 시민사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궁지에 몰리진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시 당초 이명박 정부가 인권위를 이렇게 타박할 엄두조차 못 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번 사태를 통해 인권위가 진정으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은 위안거리다. 결국 인권위가 믿고 의지할 곳은 시민사회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 이번 사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